현대미포조선 여성조합원의 절규

2018.02.01 06:38

조회 수:2238




현대미포조선 여성조합원의 절규

   19년 체불임금 내놔라


[오마이뉴스/ 사회/ 변창기 기자]


지난 1월 19일 오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해고 농성장에서 만난 현대미포조선 현장투쟁위원회 의장인 김석진(58)씨는 저를 보자 반가워하며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 기자님, 현대미포조선이라는 대기업에 맞서 외롭게 싸우는 참 억울한 여성 청소노동자가 있어요. 사회적으로나 언론에서 그런 분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도 위태롭게 보이건만 여전히 안쓰러운 사정에 놓인 노동자를 도와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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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조선은 세계 제일의 중형선박 건조회사고 노동조합 생긴 지도 31년째인데 이런 사업장에서 그것도 조합원이 20년 가까이 임금 체불이 발생된 사례가 있다는게 저로선 매우 충격적이죠."

저는 미포조선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한다는 그 여성 노동자를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여성 청소 노동자 이야기]


"19년간 추가근무수당 못 받고 일해온 게 너무 억울해요."


지난 24일 오후에 정분임(61)씨를 만나보았습니다. 정분임씨는 이야기 도중 "억울하다"는 말을 수시로 하면서 자신의 살아온 사연을 이어갔습니다. 정분임씨는 30년 전 생활력없는 남편으로 인해 빚이 늘어남에 따라 옆 집의 소개로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1988년 6월 8일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했어요. 시설관리하는 부서로 보내더군요. 가보니 화장실과 샤워실 청소도 하라하고 또 화단 관리와 행사시 물품정리 같은 뒷청소도 시켰어요. 처음엔 모두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서 일하고 오후 5시 30분에 일 마치고 퇴근했어요. 그러다 노사 협상으로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하도록 바뀌게 되죠. 그러다 1999년경부터 사내 세탁소가 늘면서 세탁소 일을 맡아 하게 됩니다. 샤워장 청소나 화장실 청소는 그대로 하면서요."

정분임씨는 배운 건 없으나 '남에게 피해주지말고 성실하게 살자'는 신념으로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것 같았습니다.

"세탁소 일을 하니 1시간 더 일찍 출근해야 했어요. 현장 작업자가 맡긴 작업복을 수선하여 다음날 작업 전에 찾으러 오면 내줘야 하거든요. 회사에서 그렇게 시켰어요. 아침 1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점심 시간도 30분 일해야 한다고요."

정분임씨 뿐만 아니라 시설관리직 종업원들은 모두 아침 1시간 빨리 출근하고 점심시간엔 30분 더 일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다른 노동자보다 매일 1시간 30분씩 추가 근무를 했지만 따로 수당은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회사에 취직하는 게 봉사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다 벌어먹고 살려고 하는거잖아요. 처음 몇 개월째 그냥 일하다보니 아침 조기출근 시간하고 점심시간 30분 연장작업한 시간에 대해 빠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모르고 빼먹었나 싶어 조출(조기출근)시간 1시간과 점심시간 30분에 대해 연장 달아 달라고 회사 담당 찾아가 이야기했었지요. 19년 전부터 담당이 바뀔 때마다 이야기했고 하다못해 노동조합에 찾아가 이야기도 해봤는데 19년 동안 무시 당해온 거예요. 어느날엔 현장 반장에게 조출시간 달아 달라 했더니 '아주머니 두번 다시 조출 이야기 꺼내지 마소' 하고 윽박지르더라고요."

정분임씨는 20년 가까이를 그렇게 보냈다고 합니다.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한 지 올해로 30년째. 누구보다 성실하게 악착같이 살아온 흔적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처음 미포조선 입사 때 서른살 초반 나이로 7살, 5살 어린 자녀를 둔 주부였습니다. 얼마나 생계가 절박했으면 어린 자식들을 집에 두고 직장을 구해 다녔을까요. 그런 딱한 사정에도 회사는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라 하고 19년간 추가 수당 없이 노동을 시켜왔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연이었습니다.

옷수선 작업하는 정분임씨 정분임(60)씨는 청소만 하는게 아니라 옷수선과 세탁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옷수선 작업하는 정분임씨 정분임(60)씨는 청소만 하는게 아니라 옷수선과 세탁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 김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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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018년 정년 퇴임을 1년 남짓 남겨놓은 상태라 합니다. 내년이면 그 정든 일터를 떠나야만 합니다. 자신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열 권이나 될거라며 한숨을 쉬어 보이기도 하고 눈물 짓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이야기 나누며 든 생각은 '성실하고 정이 많으며 순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몇 위 안에 든다는 조선업계 대기업에서는 왜 근로계약 관계를 무시하며까지 20년 가까이 임금을 체불했을까요?

지난해 11월경엔 미포조선 사장님이 현장 시찰을 왔다고 합니다. 정분임씨는 그 자리에서 사장님께 하소연했다고 합니다.

"사장님, 우린 너무 어렵습니다. 우린 잔업, 특근도 없습니다. 130만원 정도 되는 기본급으로 먹고 삽니다. 지난 20여 년간이나 조출시간 달아 달라고 부탁했었는데도 안달아 주어 속상합니다. 사장님께서 제발 좀 해결해 주세요."

애원하다시피 간곡하게 부탁드려 봤으나 해가 바뀐 오늘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요. 미포조선에 30년 다니면서 억울한 사연이 너무 많아요. 남자들 다 하는 안전교육 우린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남자 직원은 경주로 교육도 보내주던데 우린 여자라고 그런지 안보내주더라구요. 회사가 주는 상, 남자들은 돌아가면서 받던데 여자들은 제외시켜요. 남자들 작업복 줄 때 여자는 안줘요. 이거 인간차별, 성차별 아닙니까?"

정분임 조합원이 사장에게 보낸 체불임금 요청서
본인은 1988.6.8.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했으며, 1999년부터 사내 세탁소에서 옷 수선과 옷 정리 그리고 현장사무실,목욕탕, 화장실 청소업무를 하여오고 있습니다.

본인은 지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세탁소 업무관리를 위해 정상근무 시간 외 오전 1시간 추가근무(07:00~08:00)와 점심시간 30분 추가근무를 하도록 회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아 19년 동안 1일 1시간 30분의 무임금 초과 근무를 해왔습니다.

이에 본인은 1999년 당시부터 현재까지 상급관리자들에게 끊임없이 부당함을 호소하며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해 왔으나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 회사의 최고 책임자이신 대표이사님께 직접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체불되 임금을 체권자에게 조속히 지급해 주십시오.

2017.12.26. 정분임.

위 내용은 정분임씨가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 앞으로 보낸 내용 전문을 그대로 옮긴 것 입니다. 회사 동료 김석진씨가 도와주었다며 보여주셨습니다. 정분임씨에게 정년 1년을 남기고 있는데 뭘 할 계획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미포조선에 입사한 지 30년이 되었는데 그중 20년 동안 당한 게 너무 억울해서 꼭 이 문제 매듭짓고 퇴직하고 싶습니다. 차별이 제일 기분 나빴습니다. 현장엔 5% 깎였는데 저에겐 30%나 깎았습니다. 현장에는 없는 차별이 왜 시설관리에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이 그러대요. 2년 늘어난 것만으로 고맙게 여기라고요. 왜 저만 피해보고 당해야 하는지 묻고 싶어요. 사장님과 면담 후에도 바뀐게 없어요. 그래서 더 억울합니다. 그후 회사 관리자가 와서 3년치 위로급 줄테니 그만하라 해요. 만약 제가 회사에 20년 잘못했다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20년의 잘못을 따지고 그 이자까지 물어내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잘 모르는데 법에 3년치만 주면 된다카네요. 시달린 세월 20년이 노예로 살아온거 같아요."

회사, 3년치 공탁금 걸어... 노조 "노사 이견으로 보류 중"

"정분임씨가 20여년간 노예 생활 해온거 같다면서 매우 억울해 하던데요. 1시간 30분에 대한 임금체불 입장이 뭡니까?"

저는 회사 담당자와 노동조합 관계자에 전화 통화로 알아보았습니다.

회사는 "원만한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정분임 사우와의 입장 차가 커서 법리적 검토 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노력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회사와 통화후 정분임씨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회사에서 2700여 만원 정도로 공탁을 걸었다는 내용의 우편물이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에 체불 임금 시효가 3년인 점을 들어, 법적으로 3년치 체불 임금만 주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조합은 "우리 집행부는 지난해 11월 20일 취임 후 시설관리 조합원 두 분이 임금체불 문제가 있다고 보고받아 두 분 조합원에 대해 회사와 협의를 진행했었다. 조합원 한 분은 5년의 체불 임금을 3년치와 위로금 해서 회사 제시안을 받아들여 원만히 해결되었으나 정분임 조합원 건은 19년이라는 세월동안 임금이 체불되어 억울한 면도 많아 합의 도출을 못한 사안이다. 작년 취임하면서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노사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보류중이다. 우리 노조는 정분임 조합원 입장에서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대미포조선 현장투쟁위원회 의장 김석진씨는 정분임씨 임금체불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정분임 조합원의 임금 체불 건은 법을 떠나 회사가 도의적으로 19년치를 모두 지급해야 합니다. 민주당 백재현 의원실에서 발의되어 있는 근로기준법 49조 개정안이 반드시 본회의에 통과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는 임금 체불로 고통당하는 노동자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워 나갈 생각입니다." 

30여년 모은 급여명세서 정분임(61)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급 봉투를 다 모았다며 보여주었습니다.
▲ 30여년 모은 급여명세서 정분임(61)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월급 봉투를 다 모았다며 보여주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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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현 의원, 재직기간 체불 임금 모두 받게 하는 개정안 발의 

임금의 시효
[임금 시효 3년, 임금채권의 범위 및 기산일]


- 근로기준법 제49조 -
제49조(임금의 시효) 이 법에 따른 임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

해설>>

1. 내용 : 임금의 시효는 3년이다.
2. 임금채권의 범위 및 기산일 :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 (근로기준법 제2조 제6호) 

 1) 임금 (근로계약시 정한 임금지급일)
 2) 상여금 (권리의 발생 시기)
 3) 연차휴가근로수당 (연차휴가 불실시가 확정된 날?)
 4) 퇴직금 (퇴직일)

근로기준법 49조에 체불 임금 시효를 3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백재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근로기준법 개정 내용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김석진씨를 통해 백재현 국회의원 한현규 노동비서관에게 자료 요청을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문자로 "어떤 연유로 근로기준법 49조(임금의 시효)에 대해 개정하고자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답변을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오래전부터 임금체불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현행법을 살펴보던 중 근로기준법 49조는 지난 3년 범위만의 체불임금을 구제받을 수 있는 현행제도로서 노동자에게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고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재직기간 중 임금체불에 대한 고소고발진정 등을 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법률만큼은 재직기간 중 일어난 모든 체불임금에 대해서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입법 작업을 시작하고 발의하게 된 것입니다."

아래는 백재현 국회의원실에서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제 49조 개정법률안입니다. 제안 이유에서 "임금채권의 기산일을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종료한 때부터 3년간으로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재직기간 전체 중 발생한 체불임금 피해에 대한 구제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임(안 제49조)"이라고 밝혀 두고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근로기준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49조 중 "3년간"을 "사용자와의 근로계약이 종료한 때부터 3년간"으로, "시효로"를 "시효의 완성으로"로 한다.

부 칙

제1조(시행일) 이 법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2조(임금채권에 관한 적용례) 제49조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임금채권을 행사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

개정법률안이 잘 통과되어 더는 임금 체불로 억울한 노동자 사연이 사라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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