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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왕국' 현대중공업 '어용 노조' 12년 만에 몰락

[박점규의 동행]<13> '민주 노조' 등장, 3만 사내 하청에게도 희망일까?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지금 노동자 도시 울산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에서 12년 만에 민주 노조가 들어섰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낭보에 10월 18일 밤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톡방은 현대중공업 민주파 당선 소식으로 떠들썩했습니다.
현대중공업 제20대 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노사협조주의 심판 연대회의' 소속 정병모 후보가 52.7%를 얻어 45.5%를 얻는 데 그친 김진필 현 위원장을 누르고 당선됐다는 소식에 언론은 '12년 만에 강성노조', '19년 무파업 기록 깨지나'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하며 민주 노조의 부활을 우려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조선 분과뿐만 아니라 회사의 입김이 강하다는 비조선 분과까지 민주 세력이 이기며 예측 이상의 쾌승을 거두었다"며 "1987년 민주 노조를 세우며 노동자대투쟁의 출발이 됐던 현중 노조가 2002년 어용 노조로 바뀌고,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 후 금속노조에서 제명됐던 어둠의 역사가 끝장났다"고 평가했습니다.

1987년 민주 노조 건설, 1989년 128일 파업, 1990년 25일 골리앗 파업, 1994년 63일 LNG선 점거 파업 등으로 현대중공업은 민주 노조의 빛나던 이름이었습니다. "사랑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여"로 시작하는 노래 '골리앗의 그림자'는 '파업가', '철의 노동자'와 함께 노동자들의 인기 노동가요였습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19년 동안 현대중공업에서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이 사라졌습니다. 2002년 어용 노조가 들어서고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과 연대에 나서기는커녕 간부들이 장례식장을 때려 부수고, 탄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은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했습니다.

민주 노조의 자랑에서 노사협조주의의 상징으로

이후 현대중공업은 노사협조주의의 상징으로 포장되었습니다. 보수 언론은 비정규직을 외면해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했는데도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으로 보도하고, 현대중공업의 노사협조주의와 무쟁의를 이용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매도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현대중공업과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 서울지하철, KT 노조를 묶어 제3노총을 출범시키기 위해 적극 개입했습니다. 2011년 11월 100여 개 노조, 3만 명 규모로 국민노총이 출범하자 2012년 1월 노사정 신년 인사회에 한국노총 대신 처음으로 국민노총을 참여시켰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해 정부의 각종 노사정 관련 위원회에 국민노총을 포함시켜 한국노총에 위협감을 주고, 상급 단체의 분열을 통해 민주노총을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지하철 노조에 이어 현대중공업 노조의 민주 노조 당선으로 '엠비(MB) 노총'의 꿈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진 '엠비(MB) 노총'의 꿈

현대중공업은 명실공히 세계 1위 조선소입니다. 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드는 조선 사업을 주축으로 해양, 플랜트, 엔진기계, 전기전자시스템, 그린에너지, 건설 장비 사업에도 진출해 울산·군산·음성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보고된 현대중공업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액은 2009년 21조1422억 원에서 2012년 54조9737억 원으로 두 배 이상이 됐습니다. 세계적인 조선 경기의 불황으로 순이익은 줄었지만 세계 최대의 조선 회사라는 명성은 굳건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2년 말 현재 현대중공업에 정규직 노동자는 생산직 노동자 1만7000명을 포함해 2만5111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2009년 2만4982명에 비해 고작 129명이 늘었습니다. 매출액은 160% 늘었지만 정규직 노동자는 고작 0.5% 늘어난 것입니다.

▲ 현대중공업 2009~2012년 매출액 및 종업원 현황. ⓒ박점규

하지만 직원의 숫자에는 생산직과 사무직, 연구직 노동자들만 포함되어 있을 뿐,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빠져 있습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는 2만5000여 명에 달합니다.
3000여 명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군산조선소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파악하기 힘든 음성공장, 블록을 만드는 포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3만 명 이상의 사내 하청 노동자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의 두 배에 가까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세계 1위 조선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2010년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300인 이상 사내 하도급 현황' 조사에도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는 1만9166명으로 조사되어 있을 뿐 군산공장, 음성공장에서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3년 동안 매출액 160%↑, 인원 0.5%↑…사내 하청 3만 명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인 오세일(42) 조합원은 정규직 노조의 선거 결과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10년 이상 노사협조주의 집행부를 선택했고, 투쟁을 외면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파 집행부를 당선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주변의 동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사실 이유는 단순한지도 모릅니다. 이웃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친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10만 원 가까이 기본급을 인상해왔고, 2000만 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아왔습니다. 그에 비해 노사 평화를 선택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이 오르지 않았고, 조선 경기의 불황까지 겹치면서 잔업과 특근도 사라져 먹고살기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노조 민주파 당선의 1등 공신은 현대자동차라고 말합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과 임금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올해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 분노가 폭발했다는 것입니다.

울산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단순 조립공인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보다 기능공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노사협조주의 집행부 10년 사이에 중공업과 자동차의 임금이 역전되고, 올해에는 현대차 노동자들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본급 7500원 인상에 합의하면서 현대중공업의 폭압적인 노무관리도 민주파 당선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노사협조주의 12년, 쪼그라든 살림살이

그렇다면 현대중공업 민주파 노조의 당선이 3만 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이 될까요?

오세일 조합원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태도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회사는 여전히 다수의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내 하청을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여기고, 사내하청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는 현장의 정서가 오랫동안 지속돼왔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에서 두 번씩이나 부당 해고라고 판정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현대중공업 공장 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오세일 조합원의 사례는 악명 높은 현대중공업 노무관리에 맞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2003년 12월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로 입사한 오세일은 도우라는 사내 하청업체에서 '족장'이라고 부르는 선박 건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안전 지지대와 발판 등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5년 11월 4일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추락해 1년 2개월 동안 요양 치료를 받은 후 현장에 복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청 회사는 그가 족장 작업을 하기 어렵다며 공장 밖 사무실로 출근시켰습니다. '작업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달았지만, 사내하청노조 지회장을 지낸 오세일 씨가 공장 안에서 노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7년 4월 17일 해고됐습니다. 2010년 3월 대법원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도우산업은 그를 공장 안으로 출근시키지 않았고 또다시 해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2013년 9월 26일 대법원이 두 번째 부당 해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공장 안으로 복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도우산업은 또 다른 이유를 들이대며 그를 다시 해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과 도우산업이 공장 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산업재해와 부당노동행위가 밖으로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오세일 조합원은 말합니다.

대법원에서 두 번 부당 해고 판결 받고도 복직 못해

ⓒ박점규
대법원 판결을 받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23일 저녁에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주관으로 집회도 열었습니다.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되고 나서 현장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 일대에서 오세일 조합원의 대법원 복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서명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받으려고 합니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노조를 알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서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지만, 물방울 하나하나가 바위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첫발을 떼려고 합니다.

회사는 노사협조주의 12년의 경험으로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회사가 노조의 간부들과 현장을 모두 장악했다고 자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직한 땀방울의 힘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가슴까지 억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현대중공업 민주 노조의 부활을 계기로 사내 하청 노동자들도 차별과 탄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세일 씨는 3만 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오랜 세월 응어리진 차별과 분노도 언젠가는 터져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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