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에 이어 정규직 고용까지 위협하는 자구안

분사화는 또 다른 비정규직화! 구조조정 중단하라

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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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176호 | 발행 2016-06-15 | 입력 2016-06-15

박근혜 정부가 강하게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가운데, 최근 조선업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가 2018년까지 총 10조 3천억 원의 비용을 줄이는 고강도 자구책을 확정했다. 그 핵심은 인력 감축,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등으로 골자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자구안에는 하청 노동자들뿐 아니라 생산직 정규직의 고용까지 위협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현대중공업은 8월 1일자로 정규직만 1천여 명에 이르는 설비지원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화하겠다고 밝혔고, 이를 비조선 부문 전체로 확대할 계획도 세웠다. 대우조선은 알짜배기 특수선 부문을 분할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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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분사화에 반대해 열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오토바이 집회. ⓒ사진 출처 현대중공업노조

이는 일각의 예상보다 더 강도 높은 공격으로, ‘정규직 조합원들은 당분간 해고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만큼 가차없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해,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다. 박근혜가 “과감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것은 엄포가 아니다.

물론 정부와 사용자들이 2009년 쌍용차에서처럼 (정규직에게) 정리해고의 칼을 꺼내든 것은 아니다. 흔히 분사화, 외주화, 아웃소싱 등은 ‘저강도 구조조정’ 방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공격은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을 크게 떨어뜨릴 뿐 아니라, 비정규직 신세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고용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분사는 하청으로 내몰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힘스, 현대E&T 등은 원청에서 일감을 받아 비정규직 위주로 일하는 하청업체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보통 현대중공업에서 퇴직한 관리자들이 정년 이후에 계약직으로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IMF 위기’ 이후 민간·공공부문을 망라해 확대돼 온 분사화도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 준다. 예컨대, 한국통신은 2000년에 114 안내업무를 분사화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이 절반 가까이 깎였고, 2년 뒤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이 됐다. 사용자들은 분사화된 기업으로 노동자들을 전직시키기 위해 몇 년간의 고용 보장을 종종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번번이 깨졌다.

이 점에서, 현대중공업 사측이 설비지원 노동자들에게 2년간의 고용·임금 보장을 약속한 것은 얼마든지 파기 가능한 공염불이다. 분사를 하고 나면 이 약속은 지킬 의무도 없거니와, 노동조합이나 단체협약이 승계되는 것도 아니므로 강제하기도 쉽지 않다.

현중 사측은 분사 대상 업무가 돈 안 되는 “비핵심 업무”라며 위기 상황에서는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정당화한다. 차라리 독립경영으로 제 살길을 찾는 게 이롭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설비지원은 조선·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업무다. 이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현장을 돌며 시설을 정비·점검하고 이상이 생겼을 때 수리하는 일을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조선업 위기에 책임이 없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열악한 작업조건 속에서 목숨을 걸고 피땀 흘려 일해 왔다.

박근혜는 위기 속에서 “곪아 있는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다. 저유가로 손실이 커진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것도, 분식회계 등 부정부패를 일삼아 온 것도 사용자들 자신이다. 그 근저에는 광기 어린 이윤 경쟁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위기의 책임자들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정몽준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과실을 챙겨 무려 2조 4천억 원의 막대한 자산을 쌓았다. 현대중공업이 현재 갖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14조 원이나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분사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13일과 14일에는 설비지원 노동자 1천여 명이 사측의 공격에 분노를 토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런 투쟁을 확대해 분사화를 저지하고, 하청 노동자 해고 반대, 임금 삭감 반대 등을 위한 투쟁을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

분사 대상자들이 홀로 싸우게 둬선 안 된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설비지원 분사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전직 ‘동의서’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설비지원 쪽은 그동안 조직력이 취약하다고 여겨져 왔지만, 노동자들은 사측의 강력한 공격 앞에서 용기 있게 나섰다.

이 노동자들이 외롭지 않게 방어 전선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설비지원 분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따라서 이는 더 많은 노동자들의 고용과 조건을 지키는 데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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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구조조정 반대와 하청 노동자 노조 가입 운동을 선포하는 울산 지역 조선 노동자 기자회견. ⓒ사진 김지태

사측은 9월 중에 건설장비 사업부의 한 파트인 지게차 생산 업무를 분사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엔진사업부, 전기전자 사업부도 분사 대상에 올랐다. 이 사업 부문들은 2년 내에 매각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어서, 분사화는 사실상 해고를 위한 수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사측은 지난 2년 동안 해당 사업부들에서 야금야금 외주화도 확대해 왔다.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 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전환배치 투쟁을 당사자들만의 문제로 둬서는 안 됐다는 일부 노동자들의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하다. “올 초에도 전환배치를 막지는 못했어요. 소수가 전환배치를 거부하며 저항했지만, 당사자들의 투쟁으로만 돼 있었던 것이 문제였어요.”

이번 분사화 저지 투쟁에서는 이런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저항해 자기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흔히 시간차를 두고 공격을 한다. 이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공격이 시작됐을 때 힘을 집중해 저들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금속노조 센추리지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사측은 매년 한두 개 사업부를 분사화했는데, 아쉽게도 노동자들은 거듭 패배했다. 몇 년 뒤 금속노조는 이 투쟁을 돌아보며, “해당부서 중심으로 투쟁을 진행”했던 것이 패착이었다고 평가했다.

분사화 저지 투쟁은 비조선 사업부 노동자들만의 과제는 아니다. 분사화 저지는 구조조정에 맞서는 데서 중요한 전선으로 떠오른 데다, 사측은 조선·해양플랜트에서도 일부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사측은 다음달까지 5천3백 톤의 곡블록 물량을 외주 제작하고, 이후에는 매달 2천 톤가량을 외주화할 계획이다. 이는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의 축소를 수반할 것이다.

분사화·외주화는 정규직의 고용을 위협하는 암호명이다. 이에 맞서 각 사업부를 뛰어 넘는 단결 투쟁이 조직돼야 한다.

분사화 저지 투쟁의 교훈 - 전직자가 생기기 전에 점거 농성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

분사화는 사용자들이 인건비 절감과 고용조정을 위한 수단으로 써먹어 온 구조조정 공격의 일부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이에 맞서 왔는데, 보통 첫 출발은 분사화된 기업으로의 전직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법적으로 노동자들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전직을 해야 하므로, 노동자들의 ‘동의서’를 확보하는 것이 사용자들에게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현대중공업의 설비지원 노동자들은 성공적으로 첫발을 뗀 셈이다.

문제는 사측의 공격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간의 경험을 보면, 사측은 노동자들을 분열·고립시키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전체 노동자들과 해당 부서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해 저항을 위축시킨다거나, 조반장 등 하급 관리자들에게 혜택을 약속하며 개별 동의서를 조직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직 거부자들에게 대기발령이나 징계·해고 위협을 가해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는 것도 비일비재했다.

이 속에서 일부가 투쟁 대열을 이탈해 전직 ‘동의서’에 사인하게 되면, 사측은 이를 밑천 삼아 분사화를 강행해 나머지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고 투쟁을 제압하곤 했다. 그래서 적잖은 투쟁들이 결국 분사화를 막지는 못하고 끝까지 싸운 소수 노동자들이 다른 사업부로 전환배치 되는 방식으로 고용을 지킨다거나, 전직 시 몇 년간의 조건을 약속받는 식으로 끝나곤 했다.

이런 결과를 피하려면, 사측의 회유·협박이 가시화돼 대열이 흐트러지기 전에 점거 농성에 돌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자들의 결속을 유지하는 데서도 효과적이고, 노동자들이 해당 사업부를 장악하기 때문에 분사화해 운영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물론 설비지원 노동자들의 경우 전 공장에 흩어져 일을 한다는 특성 때문에 점거 농성이 사업장 장악이라는 효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 대열의 유지·결속과 연대의 초점을 형성할 수 있다. 2차 분사화가 예고된 건설장비의 경우에는 컨베이어에서 집단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점거파업의 효과가 더 극대화될 수 있다. 이에 더해, 조선·해양플랜트 사업부 노동자들이 대책인력 투입을 막고 피켓팅(점거 농성장 출입 통제)을 조직한다면 더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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