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삭감과 하청 노동자 확대에 나선 조선 빅3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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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155호 | 발행 2015-08-31 | 입력 2015-08-29

국내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조선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는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7월 29일에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에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3조 원, 1조 5천억 원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에 현대중공업이 3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고 발표했을 때 1천억~2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현대중공업과 꼭 마찬가지로 막대한 부실이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2분기에 현대중공업까지 1천7백억 원의 손실을 내면서 조선 빅3의 2분기 영업손실 합계는 4조 7천5백억 원에 이르렀다.

조선 빅3의 대규모 손실은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나왔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서 석유나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설비를 말한다.

세계경제 위기로 상선(商船) 수주가 급감한 2010년만 해도 해양플랜트 사업은 국내 조선업계에게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다. 상선 한 척이 3억 달러를 넘기기 힘든 데 비해, 해양플랜트 한 기는 20억 달러를 넘어가곤 했다. 석유 가격이 크게 올라 해양플랜트 발주가 절정이었던 2012년과 2013년에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전체 수주액에서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90퍼센트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해양플랜트를 무더기로 수주한 것이 지난해부터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설계를 거의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고, 부품도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설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품 공급이 지연되면서 공기(工期)가 늘어났고, 결국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저가로 해양플랜트를 수주한 것이 큰 손실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셰일석유 개발과 전 세계 석유 소비 정체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석유 가격이 급락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기 침체와 중국 성장 둔화로 일반 상선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의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총 1천3백28만 CGT(수정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2천6백99만 CGT)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한국의 상반기 선박 수주량은 5백92만 CGT를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 6백16만 CGT에 비해 4퍼센트밖에 줄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2백56만 CGT로 지난해 상반기의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일본은 2백68만 CGT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중국 등이 주로 수주하는 벌크선(곡물·광석·석탄 등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선창에 싣고 수송하는 화물선) 발주가 대폭 줄어든 반면, 한국의 조선 빅3가 주로 수주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발주가 늘었거나 별로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주잔량

조선소가 수주 계약을 체결해 놓고 아직 선주에게 인도하지 않은 물량. 수주잔량이 많다는 것은 조선소의 일감이 많다는 것을 뜻함.

올 6월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8백83만 2천 CGT로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각각 5백35만 5천 CGT, 4백78만 3천 CGT의 수주잔량으로 세계 2, 3위를 차지했다. 조선 빅3 모두 2~3년치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공기(工期)

이에 따라 조선 빅3는 저가 수주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고 조선산업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데 대응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해야 하지만, 또한 쌓여 있는 물량의 공기를 맞추기 위해 생산직 노동자를 확보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불안정한 하청 노동자로만 그 자리를 채우지만 말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현대중공업은 올 초에 이미 과장급 이상 관리직과 여성 사무직 1천5백여 명을 내보냈고, 대우조선해양 사장 정성립은 취임 초에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한 약속을 뒤집어 부장 이상 사무직 1천3백 명 중 30퍼센트 정도를 줄인다는 계획에 돌입했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6월에 1천 명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국내 조선회사들은 물량을 제때에 건조할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하청 노동자는 늘려 왔다. 예를 들어 2014년에 3조 원이 넘는 손실을 본 현대중공업도 하청 노동자를 4천 명이나 늘렸다(《2015 조선자료집》). ‘물량팀’(조선소 하청업체로부터 다시 하청을 받아 일감을 처리하고 빠지는 10~15명 규모의 단기 공사팀)이란 이름으로 미숙련 노동자 상당수도 작업 현장에 투입됐고, 최근에도 물량팀 모집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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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빅3 하청 노동자 수 (확대)

물론 해양플랜트 수주가 줄면서 앞으로 비정규 노동자 일부가 해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해양플랜트 한 기에는 최대 2천 명이 투입되지만, 상선 한 척에는 1백~2백 명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 빅3의 수주잔량은 크게 줄지 않았고, 남아 있는 해양플랜트 물량을 완공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이 비용 삭감을 위해 해양플랜트 하청업체들에 대금을 적게 지급했다가 하청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이 업무를 거부하며 반발하자 현대중공업 사장이 직접 나서 해결하기도 했다.

지배자들과 보수언론들은 ‘수조 원 손실’을 부각하며 조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사측이 공기를 맞추지 못해 더 큰 손실을 볼까 봐 두려워하는 상황은 파업 투쟁이 사측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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